개혁신학/신앙고백과 교의

성경의 가장 공적이고 검증되고 합의된 해석의 체계요 요체로서 신앙고백과 공교회의 교의

노가 없는 배 2025. 2. 7. 11:48

by 박동근 목사

 

1. 교리의 정의와 신앙에서 차지하는 위치

공적인 고백으로 인정하는 많은 요리문답과 신앙고백서를 교회는 가르쳐야하는 것을 개혁교회 교회론은 교회의 권세이며 의무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통치하실 때, 주님께서는 참된 교리를 분별하여 보편 교회가 공적으로 교리를 재정하고 교육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통치와 관련된 권세에 있어 개혁교회는 교회가 세 가지 권세를 갖는다고 가르칩니다. 그 권세는 교리 재정권이 있고, 교회법을 재정해 질서 안에서 교회가 규모 있게 사역되도록 하는 입법권이 있으며, 교회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 권징을 실시하기 위한 재판권이 있습니다. 교리를 재정하고 교육하는 것은 교회의 권한이자 의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리와 교회법의 질서 안에서 권징을 시행하며 교회를 다스리시고 돌보십니다. 바로 교리를 재정하고 가르치는 일이 합당히 바르게 시행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고 인도하시는 데 있어 중요한 일로서 교회에 주신 권한이자 의무로서 명령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있어 말씀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 교회는 말씀의 부르심으로 존재하게 된 공동체인 것입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전하여 믿게 하시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발생했고, 그들이 몸을 이루어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말씀의 터가 아니라 말씀이 교회의 터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얼굴, 곧 교회의 표지를 주셨습니다. 교회의 얼굴은 바로 말씀 선포와 성례입니다. 성례는 말씀에 뿌리를 두고, 말씀이 전하는 것을 의식으로 나타내므로, 교회의 표지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말씀의 표지로서 말씀 선포를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으로부터 나온 성경의 근본교리를 선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성경은 해석되어야 하고, 말씀이 해석될 때, 말씀 안에서 가르치는바 교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교리는 성경 안에 함축된 내용입니다. 성경이 해석되고 바르게 해석된 결과로서 교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가 교회의 권세로서 교회가 마땅히 선포하고 가르치고 고백해야할 교리들은 인간의 견해나 사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경으로부터 나온 교리를 의미합니다. 교리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 어긋난 교리는 이설이요 이단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나온 교리는 성경의 바른 해석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거짓된 교리는 물리쳐야 하고, 참된 교리는 하나님의 성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그 내용을 믿고 전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개인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에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 존재합니다. 보편 교회가 공적으로 함께 인식한 성경 해석이요 그 결과로서 교리들을 검토하고 인식하여 이런 내용을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공표한 공적 고백이 교회에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교회에 내려 주셨기에 당연히 교회의 인식과 고백의 반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에 근거하고 교회 공동체가 인식하고 고백한 성경의 근본 교리들에 근거해 성경을 해석하고 생활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신학들이 교의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 과정에서 보편적인 인식과 고백을 넘어선 개인적인 견해가 존재할 수 있는데, 이런 개인적 견해는 개인의 견해로서 보편 교회가 고백해야 할 당위성을 갖는 교의가 되지 못합니다. 교회에 하나님께서 교리 재정권을 주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신앙고백과 교의들은 성경의 모든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근본 된 교리를 교회가 인식하여 재정한 것이기에 그것이 성경에 근거하는 한에 있어서 성경의 생명같은 진리들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매우 중대한 수단이 됩니다.

신앙고백과 요리문답들은 교회의 근본 교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성경을 대신하거나 성경의 권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근본 진리를 성도들에게 전함으로 성도들이 바른 방향에서 성경에 접근하고 성경을 더욱 명확히 접근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교리는 성도들이 성경을 바르게 묵상하고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하는 성경의 매뉴얼인 것입니다. 교리의 목적은 유일합니다. 성도들이 성경에 바로 접근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이단 교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참된 교리를 정립하지 않으면 잘못된 성경 해석을 하기 일쑤입니다. 이 일들은 성경을 홀로 통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가진 연약한 성도들과 초신자들에게 안전하고 견고하고 건전하게 성경에 접근하도록 돕는 매뉴얼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앙고백과 요리문답들은 성경의 근본교리를 담고 있으므로, 성도들로 결코 빗나가서는 안 될 반드시 알아야 할 성경의 진리들을 용이하게 전하고 교육하는 필수적인 수단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보편교회의 공적인 성경 해석과 그 결과로서 근본교리를 근거로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에 접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에게만 진리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교회라는 몸에 주셨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리는 공적인 성경 인식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인 견해보다 더욱 큰 권위를 갖는 것입니다. 보편 교회가 인식하고 그것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라는 검증 안에서 교회가 함께 이런 내용을 우리가 고백함이 마땅하다고 결정한 공적인 의미에서 신학이요 신앙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교리가 성경의 근원이 아니라 성경이 교리의 근원이기에 만일 교리가 성경에서 어긋난다면, 당연히 그 교리는 부정되고 배척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충실한 고백을 무시하고 배우기를 게을리 하고 거부한다면 그것은 매우 완악한 것이며 부패한 행위인 것입니다. 개혁교회에서 목사와 교회가 반드시 교리를 충실히 전해야 하는 일을 의무화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목사가 할 일과 예배를 통해 선포할 내용은 성경을 강해하고, 보편교회의 역사적이고 공적인 교리를 해설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설교와 교육이 이러한 공공성을 잃어버려, 성경에 충실하고 역사적이고 공적인 교회의 고백들이란 객관적인 신앙의 도리를 전하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배척하는 일이 많습니다.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 시 들려져야 할 성경과 교리의 선포를 많은 사람들이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류를 간증하는 것과 혼동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과 교리는 신앙과 교회의 터입니다. 성경과 교리의 터 위에 근거하지 못한 신앙은 표류하는 신앙이요 불안전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의 체험과 열심과 신앙적 감동이 성경과 교리의 터를 떠날 때,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라기보다는 종교성에서 나온 인간의 산물일 뿐입니다. 성경과 교리라는 터를 떠난 체험과 열심과 감동은 미신에 빠질 위험이 큰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바른 성경 해석과 그 결과인 교리의 터 위에서 체험과 열심과 감동과 실천을 추구합니다. 

2. 교리의 목적과 유익들

a. 교리는 성도의 신앙이 흔들려 표류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초하게 하는 터가 됩니다. 

신앙의 대상도 중심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신앙은 신앙의 대상에 대한 지향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한 사람이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지향하는 지향성을 의미합니다. 교리는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확신하고, 무엇을 신뢰하여야할지, 우리가 알고, 확신하고, 신뢰해야할 대상을 성도에게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그분께 속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으로 알려 주시지 않으십니다.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성경이라는 기록된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교리는 이 성경이 가르치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그분께 속한 근본적인 내용들을 체계적이고 요약적으로 전달해 줍니다. 즉,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성경에 근거한 참된 교리를 재정하여 연약한 성도들에게 믿음의 대상을 바로 알고, 확신하고,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 가르치도록 권세를 주시고 의무를 주신 것입니다. 말씀과 교리를 떠난 신학과 신앙을 이설이요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말씀과 교리를 떠난 교회는 결단코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확신하고 신뢰할 수 없습니다. 

교리가 무시되고 부정된 교회들의 신앙을 잘 살펴보십시오. 이들의 신앙은 성경에 근거한 신앙이 아니라 부패한 마음에서 나온 인간의 것들을 근거해 하나님을 부르고 전합니다. 교회의 터는 말씀이라 하셨는데, 교회의 터가 인간의 체험과 경험과 판단과 취향에서 나온 것들이 터가 되며, 이들은 신앙의 준거점을 잃고 표류하게 됩니다. 말씀과 교리는 단지 사변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말씀과 교리는 지적인 것이며, 정서적인 것이고, 의지적인 것들에 토대입니다. 즉, 말씀과 교리는 알고, 확신하고, 신뢰하는 신앙의 대상이요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감동과 열심과 실천이 말씀과 교리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교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 안에 생활의 표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터를 잃고 방향성을 잃고 중심을 잃은 신앙을 표류하는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참된 교리에서 참된 생활이 나오고, 거짓된 교리에서 거짓되고 부패한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리를 단지 공부하고 지식에만 속한 정도의 것으로 대하는 태도 역시 매우 부패한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더욱 바로 알고, 더욱 확신하고, 더욱 신뢰하기 위해 교리를 공부합니다. 교리를 사변적인 것 정도로 여긴다면 그는 교리 공부의 열매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를 공부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더욱 바로 알고 더욱 확신하고 더욱 신뢰하기 위해, 곧 경건을 위해 교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교리는 우리를 더욱 온전히 성경 가운데 인도하며, 우리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도와주는 복된 수단이 되고, 신앙의 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세상을 참된 교리를 통해 더욱 성경적으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행동하게 하는 터가 될 것입니다. 교리 공부를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존재하지만 교리 없이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몹시 교만하고 어리석은 생각인 것입니다. 토대와 터 없이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오전에는 성경을 강해하고 오후에는 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적인 지혜, 인간적인 감동으로 교회를 결코 세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 나온 것으로 신앙 생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교리 위에 신앙의 집을 져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교리 재정권과 교육권을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말씀과 교리에 정주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견고하고 완전한 터 위에서 집을 짓지 않는 것이며, 그런 터를 상실한 신앙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교리를 떠나 인간적인 것들 속에서 신앙의 기쁨과 터를 삼으려는 사람들을 유다서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이들은 유다서에 의하면 유리하는 별과 같습니다. 

(1: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참된 말씀과 교리의 터 위에서 실천의 집을 지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표류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경과 교리의 터 위에서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에는 닻이 있어야 합니다. 배가 닻을 내리지 못하면, 풍랑 속에 뒤집히거나 표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향방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신앙 생활하거나, 성경과 교리의 뿌리가 없어 무엇을 신앙이 이리 저리 흔들리고, 거짓된 사상과 인간의 사상들에 영향 받으며 이리 저리 왔다갔다 표류하는 신앙은 정죄받아 마땅한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권면합니다. 

(골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흔들린다는 말은 “판단력이 결핍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왜 흔들립니까? 성경과 교리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참된 교리와 이단의 교리를 혼동합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훈들이 미혹하면 그 가르침의 문제와 왜곡됨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단과 거짓 교훈에 휩쓸리고 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단만이 아니라 성경과 교리 위에 견고히 서지 못하면, 이들은 그들에게 찾아오는 삶의 역경과 유혹들과 수많은 정황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해석하여 바른 판단력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말씀과 교리로부터 삶의 정황을 해석해낼 지혜가 부족하므로, 이들은 향방 없이 살아가고, 늘 하나님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매우 인간적인 시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5: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말씀과 교리가 정립되고 그 인식이 자라감에 따라 신앙의 사람은 그가 처한 정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내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지혜있는 사람, 장성한 사람, 분별력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단과 복잡한 인생의 문제와 환란이 일어날 때, 우리의 마음속에 참된 교리가 정립되지 않으면, 그 인생의 문제와 위기들을 하나님께 토대하여 하나님의 뜻에 토대하여 해석하고 적절히 대응할 힘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리가 정립되지 않은 사람의 특징은 부패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것에 안주하려 하고, 그러므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문제 앞에 매우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견고한 토대를 갖지 못한 이유로 이들은 이단사상이나 환란 속에서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인간의 것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의 토대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리가 아닐 때, 인생은 변덕스럽고 분주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리는 외적으로는 거짓을 분별하고 내적으로는 신앙을 강화하고 성장시키는 중요한 은혜의 수단입니다. 성경과 교리에 뿌리를 내리고 터 삼지 못한 교회는 외적으로 진리의 순수성을 지키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이단이나 세상의 악한 사상들을 이겨낼 분별력과 대응력을 갖지 못하게 될입니다. 이런 교회는 교회의 표지를 지키고 드러내는 데 큰 위기를 맞을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성경과 참된 교리로부터 생활의 열매가 맺혀지므로, 성장의 터전이요 뿌리요 토대를 잃게 되어, 진정한 건전한 체험과 열심과 실천의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온갖 자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이며 부패한 마음에서 나온 위선적인 도덕 행위들이 성령의 열매를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