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묵상

출애굽기 13:17-22 :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 하나님, 광야의 험한 길을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 코로나19라는 광야를 걷는 교회가 품어야 할 마음들!

노가 없는 배 2020. 9. 22. 09:42

by 박동근

 

1. 고난에 찬, 험난한 길로 인도하신 이유

 

a. 연약함을 아시고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 하나님

 

17-18절에서 모세는 가나안으로 가는 더 빠르고 편한 지름길을 나두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단하고 험난한 길로 인도하신 이유를 답하고 있습니다. 애굽 북방에서 가나안 남방으로 이르는 지름길은 3-4일 정도면 도달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상적으로 도착하면 한 달이 소요되는 먼 길, 홍해의 광야길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름길을 나두시고 험난하고 먼 길로 인도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연약함과 완악성 때문이었습니다. 연약함이란 이들이 전혀 훈련되지 않은 군사로 그들이 오합지졸(烏合之卒)이었음을 뜻합니다. 그들은 훈련되지 않아 잘 훈련된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게 되면 모두 혼돈 속에 빠지게 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애굽으로 귀환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은 매우 호전적이고 강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칼에 익숙지 않은 노동만 경험했던 손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완악함이란 이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잘 잊는 족속이었습니다. 매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성품을 지녀 조금 어려우면 하나님을 배반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연약하고 완악하여 준비되지 않은 전쟁을 치르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기 보다는 낙심하고 두려움에 차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맞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을 배반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블레셋을 무찔러주실 수도 있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블레셋을 피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초자연적 역사이든 자연의 이치나 사람의 이치를 사용하시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시고 인도하실 때도 있으시나 그분의 지혜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적이 아닌 인간적이고 자연적 이치를 따라 섭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자연적인 것이든 비상적인 것이든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일이 성취되니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어찌되었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연약함을 염두에 두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불상사를 막으시기 위해 지름길을 나두시고 먼 길, 험난한 길을 택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세심하게 아십니다. 세월이 흐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으로 용감하게 이방족속들과 전쟁을 치르는 훌륭한 군사로 성장했으나, 아직 훈련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려하시어 그들의 안전을 위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그 백성들을 세심한 사랑과 관심으로 인도하십니다. 무엇보다 연약한 백성을 연약한 대로 용납하시어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안전히 지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그릇에 무리한 요구를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감당할 만큼 십자가를 지워주십니다. 신앙으로나 군사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연약함 안에서 지울 수 있는 짐을 지우시고 행군의 길을 걷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아시어, 그분의 그 큰 지혜와 사랑으로 적절한 십자가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분량만큼 짐을 지우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어려움이 오면 다 이겨낼 만큼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주를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다 뜻이 있어 짐을 지우신 바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견딜만한 힘을 주시고 견딜만한 아픔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그러므로 불평 없이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그들의 역사와 인생 속에서 엄청난 일을 겪고 참으로 놀랍고 버거운 여정을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분량을 아시고 적절히 적들을 피해 가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b. 인간의 길, 사람의 길

 

우리는 이 본문에서 또 한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길이 옳다고 생각하며, 무엇이든지 빠르고 눈에 보이는 형세들만을 가지고 만사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은 다릅니다. 누가 보아도 3-4일 걸리는 짧은 지름길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돌아가는 길이 험악한 길을 택하셨습니다. 3-4일 걸리는 지름길은 인간에게 편리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들은 그 길을 택했다면, 큰 실패를 맛보고 애굽으로 도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돌아가는 길로 접어들지 않았다면, 그들은 영적 성숙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야는 연단의 장소, 하나님의 학교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40년의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로 이스라엘이 가지 않았다면, 구속사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많은 일들을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지름길이 편리한 길일지 몰라도, 하나님께 바른 길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이 하나님께는 바른 길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릅니다. 인간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7:13).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다르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람들은 늘 편한 길, 빠른 길,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많은 길을 택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불편한 길, 인내가 필요한 지루하고 긴 길, 눈에 아무런 성과 없는 광야같이 척박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근시안, 외형만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거시적인 안목과 외형 이면의 진정한 가치들을 그 백성이 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의 길에만 있는 것입니다.

 

3. 17절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 이미 아신 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생각할 때, 출애굽의 시작이 하나님께 있으신 것처럼, 그 과정과 종결이 오직 하나님께 달렸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출애굽한 백성들은 전혀 훈련되어 있지 않았고, 심성은 몹시 신앙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든 성도 안에 이런 연약함과 완악함이 존재합니다. 오늘날 성도들 역시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동요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경험한 그 은혜는 작은 바람이 불어도 곧 망각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질병은 배은망덕이었습니다. 은혜를 이야기 하지만, 정작 현실 속에서 어떤 환경과 정황에 직면하면 새파랗게 질려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조금 전 전능한 능력과 사랑을 나타내신 하나님은 환경에 떠밀려 사라지고 성도의 시야에는 환경만 가득 차보입니다. 성도들도 이런 상황에서 신뢰도 사랑도 까맣게 잊은 채, 앞에 놓인 장애물을 두려워합니다. 심지어 주신 은총은 잊고 주어진 상황만 원망하다 절망합니다. 그리고 옛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신앙이 아닌 세상을 동경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애굽으로 돌아가길 원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이고 완악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의 연약함이고 완악함이기도 합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14:3)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14:4)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나 이 이치가 진리인데, 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길에 있어 스스로 한 발짝도 시작할 수 없으며, 또 진행할 수도 없고, 스스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신 분이시면서 동시에 구원받은 자들의 길을 지속적으로 이끄시는 길잡이가 되어주셔야 합니다. 시작은 하나님께 그러나 과정과 끝은 인간에게라는 사상이야 말로 악하고 무지한 사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상인 것입니다. 시작도 과정도 완성도 하나님께서 주도하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그러므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고, 떠나가지 않으셔야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앞서 가셨고, 2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백성들을 앞서 가시며 떠나가지 않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인간의 눈으로 포착되지 못하고, 그분의 무한한 역사를 인간이 헤아릴 수 없으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란 가지적 표적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인도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실재는 그 영광과 능력에 있어 그 가시적 표적에 제한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사막의 뜨겁고 고통스러운 열기를 막아주셨습니다. 밤에는 어둠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참된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밤과 낮으로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알려주는 표적이었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두 개의 기둥이 아니라 하나의 기둥이 낮에는 태양 빛과 대조되어 어두운 구름으로 나타나고, 밤에는 구름이 불 모양으로 나타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피해 지름길을 선회하여 인도하신 곳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구덩이의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척박한 땅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2:6). 광야의 특징이 있습니다. 광야나 사막엔 길이 없습니다. 그곳은 모래 땅이고 심한 바람이 불어 늘 지형이 바뀝니다. 사막은 길이 없는 땅입니다. 그곳엔 먹을 것, 마실 물도 희귀한 곳입니다. 그리고 맹수와 해충과 도적의 무리 강도의 무리가 도사리는 곳입니다. 연약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날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인도자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이 되어주시고,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는 곳에서 음식과 물을 제공해주시고, 맹수와 해충과 도적들과 강도들로부터 백성을 지켜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들을 해방하시고 해방한 날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역을 끝마치셨다면, 이스라엘은 광야에 내던져진 고아처럼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구원을 시작하신 이가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고, 소명으로 부르신 이가 소명을 이루도록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끝이 되십니다.

 

앞서 가시고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표적,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였던 것처럼,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 사건은 죄로부터의 십자가 구원의 모형입니다. 출애굽을 주시고 그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로부터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험한 세상에서 죄성과 싸우며 신앙의 길을 걸을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하셨 듯, 떠나지 아니하시고 앞서 행하셔서 우리의 영혼을 말씀과 성령을 통해 성화시키시고 끝내 부활의 영광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밤낮 보호하고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교회를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므로,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성도들에게 낮의 사막의 열기와 밤의 어둠이 엄습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시므로 성도들의 마음을 지켜주시고 생명의 길, 복의 길로 성도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위험과 역경 속에서 말씀으로 확신을 주시고 위로를 주셔서 성도로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시험과 혼돈 속에서 말씀으로 무엇이 하나님의 길이고 무엇이 사망의 길인지 분별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성도가 광야 길을 걸을 때, 또 성도가 낮의 열기와 밤의 어둠을 만날 때,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광야가 길이 없는 땅인 것처럼, 우리 안에는 걸어야 할 길을 우리 안에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고, 안내자가 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인간은 혼돈과 방황에 접어듭니다. 인생의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을 잃어버리고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

 

성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표적인 구름 기둥과 불 기둥같은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연약하고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앞서 행하시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기에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숙곳에서 에담으로 또 진일보 합니다. 21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심으로 진행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때로는 생이 고단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무서워질 때가 있습니다. 고단하고 무력한 내 자신을 바라보며 절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마다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떠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우리에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과 같은 성경을 주셨다고 말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구름 기둥을 보아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 불 기둥을 보아야 합니다. 망막하고 혼돈스러운 상황 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를 안전한 길로 정도로 인도하는 성경의 진행을 좇아 우리도 진행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있는 한, 성령은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 그들에게 더 이상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없었으나,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구약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함을 받으며 이렇게 감사하며 노래했습니다.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작하신 이는 진행하게 하시고 완결되게 하십니다. , 그의 뜻은 성취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도 영원하고 그의 능력도 영원하고 그분의 의지도 영원합니다. 흔들리는 것은 우리이지 그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처럼 확고하고 든든한 반석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생활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감정을 말씀에 고정하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세상의 낮이 내뿜는 살인적인 열기를 막아주고, 캄캄하여 좌우를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빛이 되고 길이 되어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주야로 받은 말씀을 묵상하므로 붙드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 길을 걷게 되는지를 성도들은 경험해야 합니다. 절대로 절망스러운 세상에서, 그리고 연약하고 완악한 자신을 바라보며 절망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절망하며 답이 없는 세상이라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앞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을 인도 하셨 듯, 하나님 말씀에 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서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니 정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순종할 때 알게 됩니다. 단지 사변으로 성경의 진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순종함을 통해 더욱 온전히 경험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아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변으로 아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 뿐 아니라 알게 된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