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샤프에 따르면,
스트라스부르크 체류 시, 칼빈은 1538년 10월 부처를 통해 멜란히톤과 서신왕래를 하였다. 멜란히톤은 칼빈을 루터에게 호의적으로 소개했다. 루터는 사돌레토에게 보내는 칼빈의 답변서를 읽고 슈르라스부르크에 있던 칼빈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
루터는 칼빈을 만난적이 없고, 아마도 제네바의 종교개혁에 대해 거의 몰랐거나 아무 것도 몰랐다. 츠빙글리와 취리히에 대해 극도의 편견을 가진 것과는 달리 루터는 칼빈과 제네바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지 않았고, 죽기 전에 먼 곳에서 칼빈에게 우애 있는 인사말을 전하기까지 했다.
칼빈은 루터에게 상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칼빈 또한 루터파 신학자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멜란히톤은 루터보다 13살 더 많았고, 멜란히톤은 칼빈보다 12살 많았지만, 멜란히톤과 칼빈은 동등한 위치에서 애정어린 스승과 제자 정도의 관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멜란히톤은 칼빈을 가리켜 “진정한 신학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필립 샤프, 스위스 종교개혁, 322-3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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