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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교회가 완전의 푯대를 향해 나아가며 지녀야 할 태도

박동근 목사(안양 한길교회) 장로교회의 성도들은 예배와 정치와 교제와 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경에 근거한 신앙고백 그리고 성경의 원리와 목적에 부합한 질서 안에서 영위(營爲)한다. 성경은 교회가 발생하고 존립하며 사역하는 토대요 기초이고, 정당한 신앙고백은 말씀에 대한 교회와 성도들의 응답이다. 말씀의 부르심을 받아 신앙을 고백한 교회는 예배와 교회의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속에서 교회를 통해 가시화하고 드러낸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원리가 흔들릴 수도 멈출 수도 없다. 그러므로 칼빈은 교회에 얼굴이 있다고 말하며 교회의 표지를 강조하였다. 교회의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그리고 성경에 의존된 성례가 나타나고 권징이 교회의 표지로 추가될 수 있다. 이것이 교회가..

선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권위”의 회복을 기원하며 : 장로교 정치의 본질

박동근 목사 장로교회는 장로들의 회(會)를 통해 성도들을 돌보고 목양하며 치리하는 교회 정치 제도를 가진다. 이것이 세상에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장로교회의 외적인 체제이고 제도이다. 그러나 장로교가 가진 이러한 교회 정치 제도는 보이지 않는 토대 위에 서 있으며, 장로들의 회(會)를 통해 돌보고 목양하고 치리하는 교회 정치 제도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목적이자 단 하나의 목적을 지향(志向)한다고 할 수 있다. 장로교 정치 제도는,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교회의 머리는 오직 한 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뿐이다”라는 신앙고백을 구현하기 위해 세워졌다. 장로교와 장로교가 가진 교회 통치 혹은 목양의 원리는, “교회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으며,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시다”라는 신앙고백의 구현..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40일 금식 기도는 우리가 흉내 내서는 안 되는 구속사 속에서 특별한 사역이었음

by John Calvin, 출애굽기 34:28절에 관한 주석 “40일이라는 숫자가 반복되는 것은 둘째 돌판 역시 첫째 것 못지않게 신뢰를 받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이미 지적했지만 모세가 일상생활에서 후퇴한 것은 그가 율법을 말하자면 하늘로부터 가져오려는 뜻에서였다. 만약에 그가 산에서 겨우 3-4일 머물러 있었다면 그러한 특출한 기적을 통해서 그의 권위가 인정을 받지 못했겠지만, 사십일이라는 숫자는 백성으로 하여금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점을 알게 하는데 신뢰를 얻는데 충분했다. 그리고 그러한 장기간에 걸친 금식의 인내는 인간의 본성의 능력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의 위엄이 의심할 여지가 없게 하는 뜻에서 율법의 사역자는 천사의 영광을 부여받았다. 그러기에 그는 “그가 떡도 먹지 아..

묵상의 글 2021.06.28

육적인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으로 보는 “나”의 차이

육적인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으로 보는 “나”의 차이 – 칼빈 기독교 강요 제2권 1장 1~3절 묵상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죄와 비참을 아는 우리 자신의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 박동근 목사(안양 한길교회)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2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해설한다. 이 교의(敎義)의 중요성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달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을 절실히 갈망하고 의지하게 하는데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타락상을 깨달은 자만이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의 절대적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칼빈의 해설들을 따라가노라면, 우리는 산상수훈의 팔복의 메아리를 듣는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십계명 서론 (prologue)

by 박동근 목사 십계명 서론은 다음과 같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서론은, 먼저, 율법을 제정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십계명을 제정하여 교회에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피조물에 속한 어떤 것도 아니고, 인간도 거짓된 신들도 아닙니다. 둘째, 십계명 서론은, 계명을 순종해야 하는 이유도 알려줍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1. 십계명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에 합당한 인간의 예배와 삶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십계명은 어떤 피조물이나 인생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통해서 자신을 모든 피조물과 구별된 절대자요 지존자라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절대..

성도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내가 바라는 방식보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최선의 것을 응답하시니 매순간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응답되지 않는 기도란 없다.” 이 말은 제임스 패커가 “기도”라는 책에서 언급한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믿음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하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 희망을 가졌다가 곧 실망하기 일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한다 해도 응답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키지 않는 약속을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예가 된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

묵상의 글 2021.01.11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이 치르는 대가는 인내와 기다림이고, 인내와 기다릴 줄 아는 신앙이야 말로 참 신앙의 가장 확실한 표이다!

믿음은 약속을 바라보므로, 참된 믿음이 치를 대가는 기라림과 인내며, 참된 믿음의 진정한 표도 기다림과 인내다! 약속이 무르익는 것은 긴 시간과 긴 역사를 통해서 였다. 섭리는 그렇게 성취된다. 노아는 수많은 세월 화창한 산 위에다 배를 짓는데 자신의 인생을 소진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약속된 아들을 보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을 광야에서 연단 받았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궁극적 약속 성취는 너무도 긴 이스라엘의 역사를 흘러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을 지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성취되었다. 잘 기다리고 잘 참는 신앙이 약속의 성취를 맞이한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들 속에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고 우리를 빚어 가신다. 인내의 시간은 소모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무슨..

묵상의 글 2020.11.15

칼빈과 멜란히톤의 애정어린 교제, 취히리의 츠빙글리에 대해 적개심을 가졌던 루터는 제네바의 칼빈에게 우호적이었다!

필립샤프에 따르면, 스트라스부르크 체류 시, 칼빈은 1538년 10월 부처를 통해 멜란히톤과 서신왕래를 하였다. 멜란히톤은 칼빈을 루터에게 호의적으로 소개했다. 루터는 사돌레토에게 보내는 칼빈의 답변서를 읽고 슈르라스부르크에 있던 칼빈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 루터는 칼빈을 만난적이 없고, 아마도 제네바의 종교개혁에 대해 거의 몰랐거나 아무 것도 몰랐다. 츠빙글리와 취리히에 대해 극도의 편견을 가진 것과는 달리 루터는 칼빈과 제네바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지 않았고, 죽기 전에 먼 곳에서 칼빈에게 우애 있는 인사말을 전하기까지 했다. 칼빈은 루터에게 상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칼빈 또한 루터파 신학자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멜란히톤은 루터보다 13살 더 많았고, 멜란히톤은 칼빈보다 12살 많았지만,..

칼빈이 경험한 흑사병과 고난 속에서도 붙든 “복음의 소망과 위로”

칼빈이 레겐스부르크에 머물고 있던 동안 슈트라스부르크에 흑사병이 퍼져서 많은 피해를 입자 그는 더욱 비참함을 느꼈다. 이 전염병으로 인해 그의 사랑하는 집사 클로드 페라이, 친구 페드로투스와 카피토, 하숙생 가운데 하나인 루이드 리셔부르, 그리고 오이디콜람피디우스, 츠빙글리, 헤디오의 아들들이 숨을 거두었다. 그는 심한 불안과 우울증 상태에 빠졌는데, 이것은 파렐에게 보낸 1541년 3월 29일자의 우울한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제가 참으로 존경하였던 사랑하는 친구 클로드가 흑사병으로 죽었고, 사흘 뒤에는 루이(드 리셔부르)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저의 집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 동생(양투안)은 샤를(드 리셔부르)과 함께 이웃 마을로 갔고, 제 아내는 동생 집으로 ..

교회사 2020.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