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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배에서 성경과 신조들을 충실히 강설해야 하는 이유

공예배에서 성경과 신조들을 충실히 강설해야 하는 이유 by 박동근 목사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의 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구속의 아버지로 모시는 것이다. 구원의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연합(union)과 교제(communion)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선택과 사랑 안에서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에게 내려와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타락 전이나 타락 후나 언제나 계시를 통해 언약을 맺으시며, 관계를 이루신다. 성경 66권이 완성된 이후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유일하고 충족한 성경이라는 특별계시를 통해 자신을 알려주시고,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고, 당신께서 구속하신 일과 그 안에 있는 복들을 알려주신다. 성도와 교회는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께 속한 복들을 알고, 확신하고,..

예배 2024.02.22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 있는 성도의 기도

by 박동근 목사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기도의 열심을 품고 기도하더라도 결코 그것이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기도할 수 있는 자와 기도할 수 없는 자로 나뉘고, 이 세상에는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는 사람들과 기도할 때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큰 복과 비참 사이의 경계는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에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과 불화의 관계 속에 있기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진노와 정죄와 저주의 대상이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일반 은총이라는 것이 있어 세상에 속한 것들을 긍휼로 베푸시기도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

묵상의 글 2023.11.13

기독교적 겸손의 덕이란?

by 박동근 목사 겸손은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들과 우리에게 속한 모든 선한 것들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이러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발견한 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겸손이란 것은 “내게 무엇이 있지만 내가 이렇게 나를 낯춥니다”라는 식의 태도가 아닙니다. 겸손은 진실과 정직에 속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을 때 갖게 되는 태도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위엄을 깨닫고, 반면에 나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깨달을 때 나옵니다. 그러므로 진정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고하시고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묵상의 글 2023.11.11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실천을 낳는 믿는 위에 신앙의 집을 짓자!

by 박동근 목사 예수님께서 구원 받는 신앙과 신앙으로 살아가는 일의 중대성을 가르치시기 위해 건축자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 이 세상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건축자와 같은 사람이 있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롭고 복 받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의 건축 환경과 문화를 통해 신앙의 교훈을 주시려 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그 자재들로 보나 구조로 보나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고 계신 것은 집을 세우는 기초 혹 토대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민초들의 집은 오늘날의 견고한 구조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둑들은 벽에 어렵지 않게 구멍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고, 중풍병..

성경 묵상 2023.10.11

자유의 원리와 질서적 원리로 세워진 장로교

박동근 목사 (한길교회) 교회의 통치와 관련하여, 찰스 핫지는 장로교를 “자유의 원리”와 “질서의 원리”의 조화 속에서 세워진 교회 정치 체제로 이해한다. 자유의 원리라 함은 하나님께서는 교황이나 감독과 같은 전횡적 독재를 교회에서 몰아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종교개혁을 통해 무조건적이고 수동적인 순종을 요구하던 체제로부터 성도들을 해방하셨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자유의 원리만 아니라 질서의 원리를 근거로 세워졌다. 왜냐면 장로교회는 교황, 감독과 같은 전횡적 직제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직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것이 전횡이나 독재가 아닌 것은 직분을 통해 목양과 치리를 수행할 때 무오한 말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직분의 정당성이 직분 자체나 직분자가 아니라 성경이란 절대적 표준..

전쟁과 평화, 그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관점

박동근 목사 끊임없는 분쟁과 갈등의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평화관을 정립해야 끝없는 국가 간에 전쟁과 분쟁 속에서 세계와 국가 간의 관계를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고민할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만사에 있어 그러하듯, 이 문제에 있어서도 부패한 인류 속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려는 본성이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 인류는 이상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관점에서 온 인류를 집합주의적으로 묶고 통일시키려는 ‘국제주의’를 추구한다. 한편으로는, 국제적 관계를 무시하고 자기 국가, 자기 문화, 자기 번영만을 추구하는 ‘국가주의’를 추구한다. 부패하고 유한한 인류는 보편을 생각하면 개체를 잃고, 개체를 생각하면 보편을 잃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인류는 집단주의에 시달린 경험이 많고, 개인주의로 ..

이슈와 비평 2022.07.13

질서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거룩하고 친밀한 유대

by 박동근 목사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남녀를 동시에 창조하실 수 있으셨지만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창 2:21-22). 이 창조 행위에는 분명 의도가 있다. 성경의 통일성과 맥락을 따라 다음 사실들을 발견한다. 첫째,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하나 되게 하셨음을 뜻한다.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실 때, 아담은 처음 대한 하와의 존재 안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창 2:23a). 하와는 아담으로부터 그 유래를 갖고, 아담의 것을 공유한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아담과 하와가 거룩하고 친밀한 유대로 연합해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창 2:24). 성경은 남녀가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평등한 존재로 지음 받았다고 한다(창 1:2..

성경 묵상 2022.06.04

‘무거운 멍에’와 ‘가벼운 멍에’의 차이 - 박동근 목사(안양 한길교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다 내게 오라”고 부르셨고, 주께 돌아온 자들에게 “쉬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거운 짐”은 타락하고 무능해진 인간이 엄중하고 완전한 율법의 요구에 직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벌거벗은 채로 죄책과 부패를 지닌 채 그 본성을 따라 요구하는 율법을 직면하게 대면 정죄와 저주와 형벌을 선고 받게 된다. 박윤선 박사는 “무거운 짐”을 “율법의 부담”이라고 표현했다. 성경은 이 “무거운 짐”을 진 비참한..

성경 묵상 2022.03.29

[개혁주의, 장로교회의 설교는 어떠해야 하나?]

[개혁주의, 장로교회의 설교는 어떠해야 하나?] ‘오직 성경’의 원리에 기초한 설교는 당연한 것으로 성경의 본문을 중심한 설교 형태가 된다. 즉, 인간의 종교적 체험이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종교강론이 아니며, 문화강좌도 아니며 성경의 석의를 중시하는 성경강해의 설교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렇지만 특별한 성경 본문만을 편중해서 다루는 설교를 피하며 ‘성경 전체’의 원리에 기초해서 가능한 한 “성경 전체”를 취급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연속 강해설교”라는 설교 형태가 채택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이것은 개혁파 교회의 설교 스타일의 특징이다. 더욱이 ‘전 성경’의 원리가 설교에 적용되는 것은 성경 본문의 포괄적 취급이라는 형식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설교의 내용면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의 진리 전체를 ..

예배 2022.02.03